<제93호> 낡은 책꽂이-- 빛바랜 기억 속의 책(1) 2001년 06월 25일
그제 이 엽서 수신인의 한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이제 나이 서른에 한 아이의 엄마라는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내가 즐겨 읽는 옛 선인들의 말씀을 어디서 구하느냐고, 그리고 그 단아하고 기품 있는 태도를 배우고 싶다고, 감동적으로 읽은 책은 무엇이냐고.
나는 "단아하고 기품 있는"이란 표현 때문에 좀 찔끔해졌다. 내가 혹시 엽서 한 장을 통해 나를 과장하고 포장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냥 평범한 마흔 다섯 살의 여자일 뿐 아닌가. 내가 거리에 나가면 누가 나를 기품 있다 할 것인가, 누가 나를 우아하고 단아하다 할 것인가. 글이란 그런 것이다. 때로는 구역질 나는 포장이고 때로는 미혹에 빠뜨리는 마취제인 것이다. 그래서 글은 그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 사람이 아니다.
답장을 쓰면서 나는 내 낡은 책꽂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사 다닐 때마다 한번씩 정리한 덕에 오래 된 누런 종이에 푸른 곰팡이 끼어 있을 것 같은 예전 책들은 이제
거의 없다. 밤새워 읽으며 낙서처럼 독후감을 끄적이게 했던 그 가슴 벅찼던 책들은 이미 오래 전에 고물상의 손에 다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밑줄을 그어 놓고 간간이 모르는 단어의 뜻을 찾아 메모해 놓았던 나의 숨결이 담긴 그 책들을 왜 그리도 쉽게 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하긴 내가 어디 책만 잘 버리는가. 내겐 오래 된 편지도 선물도 없지 않은가. 시간이 지나고 그 때의 의미를 충분히 느꼈다면 모두 버린다. 내겐 다락방이 없는 대신에 기억의 창고가 좀 넓다. 곰곰이 기억의 창고로 내려가 보았다. 나를 감동시켰던 책들을 찾아서........
"마하트마 간디 자서전", 24살에 읽었는데 영혼이 있는 인간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했다. 나는 그 때, 밥하기 싫어서 군것질을 참 많이 하던 자취생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한 달 동안 군것질을 한번도 안 했다. 동네 구멍 가게 아줌마가 다른 곳으로 이사간 줄 알았다고 물어왔을 정도로 나는 열심히 밥을 해 먹고 불필요한 낭비를 줄였다, 그는 내게 담백하고 절제된 삶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법을 그의 자서전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비폭력의 도덕적 우월성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화장실 청소는 신에 대한 최대의 봉사다" 그가 만든 공동체에서 그는 아내에게 화장실 청소를 맡겼다.
투덜거리는 아내에게 그가 한 이 말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학교에서 우리 반이 화장실 청소를 맡는 게 싫지 않게 되었다. 토요일 하루 날잡아 청소당번들과 서너 시간씩 허리 구부리고 변기, 세면대, 바닥 구석구석 낀 때를 박박 문질러 윤기 나게 만들어 놓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책 덕분이었다. 1시간 이상 걸리지 않는 거리는 반드시 걸어서 가던 그를 본 후로 나도 걷기를 즐겼다. 우리 삶이 효율성의 노예가 되면 안 된다는 작은 깨달음을 주었다. 그의 공동체에서 그는 모든 종교적 선택과 자유를 지지하였다. 이슬람은 이슬람대로 힌두는 힌두대로 그들의 신앙 생활을 존중하였다. 종교가 배타적 유일 사상의 덫을 쓰면 안 된다는 걸 그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26살에 읽은 "퀴리부인 전기"는 나를 울게 만들었다. 그녀의 딸 에브 퀴리가 지은 전기 일부가 교과서에 실려 있었는데 그걸 제대로 가르쳐 보자고 읽기 시작했던 책이다. 정말 두껍고 깨알같은 글씨였다. 집중력이 뛰어났던 소녀,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언니의 학비를 벌기 위해 가정교사로 일하던 소녀, 가슴 가득 책보따리를 안고 대학교정을 걷던 그녀, 한껏 부풀려 올린 머리에 드레스 차림으로 다니던 여자들과 달리 머리를 짧게 깎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인 커다란 코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니던 그녀는 훗날 그녀의 남편이 된 삐에르 퀴리에게 '여자도 영혼이 있는 동물이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나 호수든 들판이든 강가든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면 나란히 누워서 삶과 학문에 대하여 토론하던 부부, 남편을 잃고 슬픔에 빠져 있었지만 그의 교수직을 이어받아 소르본느 대학의 최초의 여자 교수가 되어 검은 상복을 입고 첫 강의를 하게 된 그녀는 파리의 스타가 되었다. 그녀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던 그 날, 그녀는 남편에 대한 짧은 한 줄의 애도 끝에 본격적인 강의로 파리장들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단 1g의 랴듐을 얻기 위해 아이를 등에 업고 하루종일 뙤약볕 아래 서서 석탄을 집어 넣어가며 실험용 솥단지를 저었다.
그녀가 얻은 명성과 쾌거는 오로지 과학에 대한 신념 하나와 순순한 몰입에 의해서 얻어진 빛나는 결정체였다. 위대한 인간은 이렇게 달랐다. 그들은 불평하지 않았으
며 그들은 생의 목표를 알았으며 그 목표를 위해 용맹정진하는 자세는 마치 수도승처럼 단호했다. 나는 처음으로 책을 읽으며 울어 보았다. 어렸을 때 '저 하늘에도 슬픔이'란 책을 읽으면서도 울지 않았었는데 그녀의 삶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마침내 책장 위로 뚝뚝 떨어지게 만들었다. 소설보다 더 매력적인 책이 전기라는 걸알게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 전기를 읽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까치사에서 최승자의 번역으로 나온 책이었는데 책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이제 생각도 안 난다. 그의 그림을 좋아해서 그
책을 읽게 되었는지 그 책을 읽고 나서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성직자의 길을 걷기 위해 전도사로 일했던 그, 광산 노동자들과 삶을 함께 하고자 했던 그의종교적 정열이 그의 그림을 다른 화가의 그림과 다르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붓놀림 속에는 정신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보리밭을 그려도 복숭아 나무를 그려도 해바라기를 그려도 밤하늘 별을 그려도 단순한 대상의 옮김이 아니라 대상과 하나되어 주고받는 대화가 있다. 그는 늘 울부짖는 거 같았다. 가혹한 운명과 늘 따라 다니는 가난과 동생 테오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나도 자꾸 말을 하고 싶어진다. 빛과 그림자의 소용돌이가 가득한 그의 그림에서 내가 보았던 건 무엇이었을까? 스스로의 귀를 잘라낸 광기였을까, 흔히 정신과 의사들이 말하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불안한 자아였을까. 지적 토대도 독서 체험도 부족했던 나는 다만 불행한 예술가들의 삶의 고통과 치열함을 보았을 뿐이다. 나는 비로소 예술가들이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임을 알게 되었다. 예술이 단지 감성의 발현이 아니라 정신의 승리임을 알게 되었다. 고흐를 읽고 나서 비로소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이 매혹적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멕시코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전기에 대한 독후감은 93년 3월 중순 어느 날 동아일보 한 귀퉁이에 실렸기에 아직 남아 있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강진을 다녀오는 기차에서 '사랑과 열정의 여자'라는 부제를단 "프리다 칼로"를 읽었다. 여행 뒤끝의 피곤함도 잊은 채 밤새워 읽도록 나를 이끌어간 매력은 그녀의 삶을 관통하는 강렬함이었다.*** 프리다는 14살에 멕시코 명문 국립대학 예비반에 입학해 엄청난 독서와 토론을 통해 교양을 쌓던 중 18살에 타고가던 버스가 기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해 등뼈 골반 한쪽 발이 으깨지는 부상을 입게 되었다.*** 비록 석고코르셋에 온몸을 지탱한 채 다리를 절어야 했지만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서 멕시코가 자랑하는 위대한 화가 디에고를 만나 20년의 나이차를 뛰어넘어 결
혼을 한다. 디에고의 여성 편력과 두 번의 유산으로 절망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면서도 초인적인 인내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게 잘 그려져 있다.*** 그같
은 역경 속에서도 그녀는 32살에 앙드레 브르통으로부터 뛰어난 초현실주의 화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파리 전시회를 마치고 칸딘스키, 피카소와 교우하며 남미화가로는 처음으로 루브르 박물관에 그녀의 그림이 소장되는 영광을 안게 된다. 멕시코 시립미술학교의 교수가 되어 왕성한 활동을 하지만 프리다는 날로 건강이 악화되어 석고크르셋과 가죽코르셋에 이어 강철코르셋으로 몸을 지탱하는 상황에 이르고 일곱 번의 척추 수술을 받았으나 47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이 글은 자칫하면 성공한 여자의 사랑에 얽힌 뒷이야기로 흐르기 쉬운 통속성을 극복하고 예술가로서의 완성을 위해 잔혹한 운명과 맞서 싸우는 한 여성화가의 불굴의 의지와 자유정신을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다산의 삶이 겹쳐 보인 것은 가혹한 운명의 바다를 헤엄쳐 자신의 삶을 고양시킨 의지의 아름다움과 눈부신 승리였다. 한 남자는 조선의 올곧은 선비다운 모습으로, 한 여자는 태양의 나라의 전위적인 예술가의 모습으로
그러고 보니 나는 전기문학을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살아간 모습도 읽고 싶은데 우리 나라에선 전기문학이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전기라 하면 아동용 위인전이 전부이니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다.
미루나무 한 그루
이린숙의 엽서 한 장
그제 이 엽서 수신인의 한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이제 나이 서른에 한 아이의 엄마라는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내가 즐겨 읽는 옛 선인들의 말씀을 어디서 구하느냐고, 그리고 그 단아하고 기품 있는 태도를 배우고 싶다고, 감동적으로 읽은 책은 무엇이냐고.
나는 "단아하고 기품 있는"이란 표현 때문에 좀 찔끔해졌다. 내가 혹시 엽서 한 장을 통해 나를 과장하고 포장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냥 평범한 마흔 다섯 살의 여자일 뿐 아닌가. 내가 거리에 나가면 누가 나를 기품 있다 할 것인가, 누가 나를 우아하고 단아하다 할 것인가. 글이란 그런 것이다. 때로는 구역질 나는 포장이고 때로는 미혹에 빠뜨리는 마취제인 것이다. 그래서 글은 그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 사람이 아니다.
답장을 쓰면서 나는 내 낡은 책꽂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사 다닐 때마다 한번씩 정리한 덕에 오래 된 누런 종이에 푸른 곰팡이 끼어 있을 것 같은 예전 책들은 이제
거의 없다. 밤새워 읽으며 낙서처럼 독후감을 끄적이게 했던 그 가슴 벅찼던 책들은 이미 오래 전에 고물상의 손에 다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밑줄을 그어 놓고 간간이 모르는 단어의 뜻을 찾아 메모해 놓았던 나의 숨결이 담긴 그 책들을 왜 그리도 쉽게 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하긴 내가 어디 책만 잘 버리는가. 내겐 오래 된 편지도 선물도 없지 않은가. 시간이 지나고 그 때의 의미를 충분히 느꼈다면 모두 버린다. 내겐 다락방이 없는 대신에 기억의 창고가 좀 넓다. 곰곰이 기억의 창고로 내려가 보았다. 나를 감동시켰던 책들을 찾아서........
"마하트마 간디 자서전", 24살에 읽었는데 영혼이 있는 인간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했다. 나는 그 때, 밥하기 싫어서 군것질을 참 많이 하던 자취생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한 달 동안 군것질을 한번도 안 했다. 동네 구멍 가게 아줌마가 다른 곳으로 이사간 줄 알았다고 물어왔을 정도로 나는 열심히 밥을 해 먹고 불필요한 낭비를 줄였다, 그는 내게 담백하고 절제된 삶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법을 그의 자서전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비폭력의 도덕적 우월성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화장실 청소는 신에 대한 최대의 봉사다" 그가 만든 공동체에서 그는 아내에게 화장실 청소를 맡겼다.
투덜거리는 아내에게 그가 한 이 말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학교에서 우리 반이 화장실 청소를 맡는 게 싫지 않게 되었다. 토요일 하루 날잡아 청소당번들과 서너 시간씩 허리 구부리고 변기, 세면대, 바닥 구석구석 낀 때를 박박 문질러 윤기 나게 만들어 놓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책 덕분이었다. 1시간 이상 걸리지 않는 거리는 반드시 걸어서 가던 그를 본 후로 나도 걷기를 즐겼다. 우리 삶이 효율성의 노예가 되면 안 된다는 작은 깨달음을 주었다. 그의 공동체에서 그는 모든 종교적 선택과 자유를 지지하였다. 이슬람은 이슬람대로 힌두는 힌두대로 그들의 신앙 생활을 존중하였다. 종교가 배타적 유일 사상의 덫을 쓰면 안 된다는 걸 그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26살에 읽은 "퀴리부인 전기"는 나를 울게 만들었다. 그녀의 딸 에브 퀴리가 지은 전기 일부가 교과서에 실려 있었는데 그걸 제대로 가르쳐 보자고 읽기 시작했던 책이다. 정말 두껍고 깨알같은 글씨였다. 집중력이 뛰어났던 소녀,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언니의 학비를 벌기 위해 가정교사로 일하던 소녀, 가슴 가득 책보따리를 안고 대학교정을 걷던 그녀, 한껏 부풀려 올린 머리에 드레스 차림으로 다니던 여자들과 달리 머리를 짧게 깎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인 커다란 코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니던 그녀는 훗날 그녀의 남편이 된 삐에르 퀴리에게 '여자도 영혼이 있는 동물이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나 호수든 들판이든 강가든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면 나란히 누워서 삶과 학문에 대하여 토론하던 부부, 남편을 잃고 슬픔에 빠져 있었지만 그의 교수직을 이어받아 소르본느 대학의 최초의 여자 교수가 되어 검은 상복을 입고 첫 강의를 하게 된 그녀는 파리의 스타가 되었다. 그녀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던 그 날, 그녀는 남편에 대한 짧은 한 줄의 애도 끝에 본격적인 강의로 파리장들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단 1g의 랴듐을 얻기 위해 아이를 등에 업고 하루종일 뙤약볕 아래 서서 석탄을 집어 넣어가며 실험용 솥단지를 저었다.
그녀가 얻은 명성과 쾌거는 오로지 과학에 대한 신념 하나와 순순한 몰입에 의해서 얻어진 빛나는 결정체였다. 위대한 인간은 이렇게 달랐다. 그들은 불평하지 않았으
며 그들은 생의 목표를 알았으며 그 목표를 위해 용맹정진하는 자세는 마치 수도승처럼 단호했다. 나는 처음으로 책을 읽으며 울어 보았다. 어렸을 때 '저 하늘에도 슬픔이'란 책을 읽으면서도 울지 않았었는데 그녀의 삶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마침내 책장 위로 뚝뚝 떨어지게 만들었다. 소설보다 더 매력적인 책이 전기라는 걸알게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 전기를 읽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까치사에서 최승자의 번역으로 나온 책이었는데 책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이제 생각도 안 난다. 그의 그림을 좋아해서 그
책을 읽게 되었는지 그 책을 읽고 나서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성직자의 길을 걷기 위해 전도사로 일했던 그, 광산 노동자들과 삶을 함께 하고자 했던 그의종교적 정열이 그의 그림을 다른 화가의 그림과 다르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붓놀림 속에는 정신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보리밭을 그려도 복숭아 나무를 그려도 해바라기를 그려도 밤하늘 별을 그려도 단순한 대상의 옮김이 아니라 대상과 하나되어 주고받는 대화가 있다. 그는 늘 울부짖는 거 같았다. 가혹한 운명과 늘 따라 다니는 가난과 동생 테오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나도 자꾸 말을 하고 싶어진다. 빛과 그림자의 소용돌이가 가득한 그의 그림에서 내가 보았던 건 무엇이었을까? 스스로의 귀를 잘라낸 광기였을까, 흔히 정신과 의사들이 말하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불안한 자아였을까. 지적 토대도 독서 체험도 부족했던 나는 다만 불행한 예술가들의 삶의 고통과 치열함을 보았을 뿐이다. 나는 비로소 예술가들이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임을 알게 되었다. 예술이 단지 감성의 발현이 아니라 정신의 승리임을 알게 되었다. 고흐를 읽고 나서 비로소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이 매혹적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멕시코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전기에 대한 독후감은 93년 3월 중순 어느 날 동아일보 한 귀퉁이에 실렸기에 아직 남아 있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강진을 다녀오는 기차에서 '사랑과 열정의 여자'라는 부제를단 "프리다 칼로"를 읽었다. 여행 뒤끝의 피곤함도 잊은 채 밤새워 읽도록 나를 이끌어간 매력은 그녀의 삶을 관통하는 강렬함이었다.*** 프리다는 14살에 멕시코 명문 국립대학 예비반에 입학해 엄청난 독서와 토론을 통해 교양을 쌓던 중 18살에 타고가던 버스가 기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해 등뼈 골반 한쪽 발이 으깨지는 부상을 입게 되었다.*** 비록 석고코르셋에 온몸을 지탱한 채 다리를 절어야 했지만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서 멕시코가 자랑하는 위대한 화가 디에고를 만나 20년의 나이차를 뛰어넘어 결
혼을 한다. 디에고의 여성 편력과 두 번의 유산으로 절망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면서도 초인적인 인내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게 잘 그려져 있다.*** 그같
은 역경 속에서도 그녀는 32살에 앙드레 브르통으로부터 뛰어난 초현실주의 화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파리 전시회를 마치고 칸딘스키, 피카소와 교우하며 남미화가로는 처음으로 루브르 박물관에 그녀의 그림이 소장되는 영광을 안게 된다. 멕시코 시립미술학교의 교수가 되어 왕성한 활동을 하지만 프리다는 날로 건강이 악화되어 석고크르셋과 가죽코르셋에 이어 강철코르셋으로 몸을 지탱하는 상황에 이르고 일곱 번의 척추 수술을 받았으나 47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이 글은 자칫하면 성공한 여자의 사랑에 얽힌 뒷이야기로 흐르기 쉬운 통속성을 극복하고 예술가로서의 완성을 위해 잔혹한 운명과 맞서 싸우는 한 여성화가의 불굴의 의지와 자유정신을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다산의 삶이 겹쳐 보인 것은 가혹한 운명의 바다를 헤엄쳐 자신의 삶을 고양시킨 의지의 아름다움과 눈부신 승리였다. 한 남자는 조선의 올곧은 선비다운 모습으로, 한 여자는 태양의 나라의 전위적인 예술가의 모습으로
그러고 보니 나는 전기문학을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살아간 모습도 읽고 싶은데 우리 나라에선 전기문학이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전기라 하면 아동용 위인전이 전부이니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다.
미루나무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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