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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e—intro—intercolumn

칼럼소개 특 63 호> "동산지기"

by e-bluespirit 2001.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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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필요한 사람들!!

이미 고인이 되신 어느 목사님께서는 북한에 가족을 두고
떠나옴으로서 평생의 한을 품고 사셨던 분이시다.
하루는 예배 중에 어느 여자 집사가 기도하기를
"하나님! 김일성이 회개하고 예수 믿게 해주세요!" 라고 하였는데
그만 목사님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강대상을 치면서
"그것도 기도라고 하는 거냐?" 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맺힌 한이 오죽했으면 그랬겠는가 만은 과연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없을 만큼 악한 사람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편견이라고나 할까?
우리의 악한 죄성은 어떤 특정 사람들의 불행이나 아픔에 대해서는 민감해 하면서도
또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을 가진다.
얼마 전 미국의 엄청난 테러가 발생한 직후 보복성 전쟁의 소문이 자자할 때에
인터넷에 올라온 한 줄의 글이 잊혀지지 않는다.

"미국 시민의 한 생명이나 빈민국가의 한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다"



보복성 전쟁으로 야기될 또 다른 억울한 죽음에 대한 우려는 저만치 외면되고
며칠을 계속해서 거의 일방적인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수많은 억울한 죽음들이 속출되고 있지만 그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의 감정은 이상하리만큼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어떤 특정신분의 사람에 대해서 편견을 가졌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을 대하는 유대인의 편견이 그러했고
불치병에 걸린 사람과 죄인들에 대한 편견이 그러했다.
그러한 편견은 예수님의 행동마저 시비를 걸고 그 분의 인격까지 의심하게 했다.
삭개오와 세리 마태의 집에서 걸어왔던
바리새인들의 시비는 그러한 편견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세리나 죄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일 뿐 긍휼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들의 영혼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해서는 생각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소리 없는 백색가루의 공포가 미국지역만 아니라 이곳까지도 전해지고 있는가 보다.
어떠한 종교를 가졌든지, 어떤 혈통을 지녔든지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의 공포와 협박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며 복음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나님의 긍휼조차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일성이든, 세리와 같은 존재이든, 오사마 빈 라덴이든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주님의 간섭과 은혜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부자나 가난한 자, 강한 자나 약한 자가 다를 수 없으며,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와 무한하신 사랑을 경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세리가 있다면 어떤 종류의 사람들일까?
용납하지 못하고 불편스러워하는 내 마음의 세리는 누구일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동산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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