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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e—intro—intercolumn

칼럼소개 특 64 호> "sezanne의 경영칼럼"

by e-bluespirit 2001. 10. 21.







★ 베네통의 광고 쿠데타(1. "토스카니" 는 현실만을 말한다)



 1. 허구뿐인 상업광고의 세계

항상 아름답고 항상 행복하기 만한 지상 낙원,
더러움이라곤 아예 없는 푸른 숲과 화사한 온갖 꽃들이 사시사철 피어있는 세상,
언제보아도 먼지하나 보이지 않고 번쩍거리는 승용차엔 항상 날씬하고 아름다운 미녀가
타고 그림같은 도로변만 달린다.

화장품 덕택에 땀구멍조차 보이지 않는 매끄럽고 티없는 피부를 가지게 된 미녀들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피부는 여전히 촉촉한 20대고
임신을 했어도 임산부의 뱃살이 부르트는 일 같은 것은 절대로 없다.
짓무르는 일도 없는 아기엉덩이는 24시간 뽀송뽀송하기만 해서 엄마는 계속 탄성뿐이고...

이세상 모든 아빠들에겐 부도와 파면, 휴업과 실업도 없다.
모든 경제적 문제는 금방나온 신용카드 하나로 해결되고
드링크 한 병과 남성용 신제품 스킨로션 때문에 사그라들줄 모르는 아빠의 정력앞에는
스트레스도 없고 피로도 모른 채 얼굴엔 항상 가족사랑만 가득하다.

탈렌트 같은 엄마는 많은 가사노동에도 불구하고 항상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깔끔한 헤어스타일에 일류 디자이너가 만들었음직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서 빨래 끝이다.

전쟁과 기아와 갈등으로 번뇌하고 있는 이 지구촌에 어이하여 상업광고의 세계만은 이렇게
항상 행복 뿐일까? 왜 밤낮으로 가상행복을 노래하는 데만 열중들 일까?
상업광고란 현실세계에 있지도 않은 황당한 낙원만을 읊조려야 한다는 무슨 법칙이라도
있는 것인가?

하이트 맥주의 시원함은 천길 낭떠러지에서 다이빙하는 "원빈"의 모습에서도 새삼스레 느껴
진다. 허나 CF에서 실제 다이빙한 사람은 "원빈"이 아니라 현지 스턴트맨이었다.
왜 그들은 인건비를 두배로 쓰면서 원빈과 스턴트맨을 따로 고용한 것일까?

그러나 더 답답한 건 소비자들이다.
그들은 모두 원빈이 다이빙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걸 당연시 생각하고
다이빙 흉내만 내는 원빈의 모습을 보고 맥주맛도 시원할 거라고 지레 짐작해버린다.

검게 그을은 농부들의 깊게 패인 이미지나 지하철 노숙자들의 모습엔 얼굴을 돌리면서
이 허무맹랑한 가짜 이미지는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무섭게 길들여져 있다.
고통스런 현실은 아예 안보는게 낫다고 판단한 거겠지....

그래서 현실까지 잊어버리고 그 것을 상품과 혼동하고 그 것도 부족해서 상품값에 기업의
광고료까지 얹혀서 착실하게 그 상품을 사주고 있다.
기업들이 거짓 이미지를 만드는데 아주 신명이 나게끔 되어있다.

베네통의 광고 쿠데타는 바로 여기에서 부터 시작된 것이다.
광고에 생판 거짓말이 아닌 보다 정직한 현실을 담아보자는 생각이다.


2. 베네통의 광고 쿠데타와 "올리비에로 토스카니(Oliviero Toscani)"

베네통은 다아시다시피 세계적인 의류생산업체다.
이 업체의 광고혁명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베네통의 이러한 광고 신화는 사장인 루치아노의 적극적인 후원과 "올리비에로 토스카니"
라는 남다른 눈을 가진 이태리의 한 팻션 사진작가와의 콤비네이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토스카니는 과거 상업광고에서는 한 번도 사용한 일이 없는 이미지로서 상업광고의 영역을
뒤흔들어 놓은 사람이다.
해서 세계언론과 지구촌의 정치.사회.문화계의 거센 비판뿐만 아니라 소비자 대중사회에도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그런 인물인데...

신부와 수녀의 키스장면이라든가...
흑인여자품에서 젖을 빨고 있는 백인아이...
총에 맞아죽은 병사의 피묻은 옷....
에이즈로 죽어가고 있는 환자의 최후의 모습...
사람뼈를 들고 있는 살인마 같은 병사....와 같은

선뜻한 이미지를 그는 마치 현실의 고발자처럼 들고나와 항상 문제를 제기하곤 하였다
그때마다 세계는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시끄러웠고 거센비판은 토스카니를 항상 코너에
몰아 세우곤 했다.

돈을 벌기위해 깜짝쇼를 벌리는 기회주의자,
남의 불행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파렴치한,
이미지 테러리스트...
끔찍한 이미지로 광고계의 명예를 더럽힌 무례한,

그에 대한 비난은 칭송만큼이나 많고 다양하다.


3. 토스카니의 광고철학

그러나 토스카니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비난과는 전혀 다르게 들리는 면이 너무 많다.
그가 그려내고 있는 베네통의 광고부터가 일반 상업광고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 상업광고가 가지고 있는 감각으로 결코 광고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토스카니는 미남미녀와 낙원같은 거짓 이미지를 동원하여 우리상품만 사달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신,

아직도 이 지구상에 상존하고 있는 인종차별주의와,
비인간적인 전쟁과 곳곳에서 난무하는 폭력,
덮어지고 있는 각종 시사적인 잇슈,
섹스 등 타부시되어 편견의 장막에 가리워져 있는 온갖 사회현상들....을 통하여 현실을
말하고 싶어할 뿐이다.

그의 광고는 환상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그래서 때로는 끔찍하기 까지한 우리의 현실이 그의 광고다.

광고를 통해서 현실을 망각하고 환상에 사로 잡히는 것이 아니라 광고를 통해서 오히려
우리 주위의 그늘진 현실을 깨닫게 하고 다시한번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게 그의 광고다.
또한 이를 계기로 광고를 만든 기업과, 광고를 보는 소비자와, 이 사회가 서로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가 생각하는 현실의 개선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쉬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밝은 태양아래로 현실을 끌고 나와 우리 모두가 모여서 함께 대화하고 토론하는
데서 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토스카니가 추구하는 새로운 광고의 현실은 때로는 본다는 것이 조금 선뜻할 수는 있다.
그러나 모델만 설치던 그 광고안에는 항상 "나와 우리"가 들어있다.

그래서 화려한 거리와 멋진 디자인의 의상 대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거리와 거기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삶과 현실이 묻어있는 평범한 옷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그의 모델들은 그래서 팻션이 무언지 모르는 동구권국가나 터키, 만주의 작은 마을에서
흔히 볼 수있는 초라한 농부들과 근로자들이다.

그는 소비자에게 옷을 팔려고 하지 않는다, 사라고 설득하지도 않는다.
그는 단지 소비자와, 이 사회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다.

전세계 7,000여 점포에서 팔려나가는 베네통의 옷들은 좋은 품질과 다양한 디자인과 색상
이라는 메리트만으로도 그 성과는 충분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소비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표이미지를 철학적으로 한단계 승화시켜 나간다.

베네통 역시 돈을 벌기위한 기업이다.
해서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러나 돈을 추구하는 방법은 다르다.

그래서 베네통은 마침내 광고가 아니라 우리사회가 금기시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거리의 신문이 되었다. 대자보가 되었다.
토스카니는 광고를 통하여 옷을 팔려고 하는 대신 사회적 캠페인을 하였다


4. 최초의 광고 : 인종차별정책에 대항하는 이미지 캠페인

1990년도 세계적인 대논쟁을 불러일으킨 첫번째 광고는 united colors 즉, 반인종캠페인이었다.

이 것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흑인여자의 품에 안겨 젖을 빨고있는 백인아기의 이미지다.
다음에도 역시 흑인아기와 백인아기가 함께 놀고 있는 이미지에
백인과 흑인여자가 아시아계 아이를 데리고 있는 모습,
흑인과 백인이 수갑으로 한데 묶여있는 이미지 등을 선보였다.

또한 영국여왕의 피부를 까맣게 해서 내보내는가 하면,
교황을 아시아인으로 만들고,
마이클 잭슨을 하얀 백인피부로,
슈왈츠제네거를 마이클 타이슨으로도 만들어 인종차별에 대한 캠페인을 계속하였다.


이 캠페인은 전 세계사람들로부터 대단한 환영을 받았으나 환영만큼 거센 항의와 외부압력 역시
이에 못지않았다.

미국의 흑인좌파조직은 백인 아기와 흑인 유모라는 오래된 식민주의적 시각이라는 이유를
들어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고 미국내 베네통의 여론몰이를 잠재웠으며,

당시 인종 차별정책을 펴고 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광고스폰서로부터 일체의 후원을
거부 당했으며 포스타 게시조차 일체 금지당했다.
그리고 미국의 광고대행사들까지도 한목소리가 되어 광고포스터에 흑인모델들을 등장시키는
것을 철회하고 장미빛 피부색깔의 백인아가씨를 쓰도록 베네통에 압력을 넣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베네통은 끝까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언젠가는 고질적인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이 종식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 10년 후 정말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선 인종차별정책이 폐지되고 만델라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이름으로 루치아노와 토스카니를 인종차별정책 종식
을 위한 공로자의 자격으로서 그들을 공식 초청하였다.
베네통의 두사람은 이때 가진 못했지만 대신 그 곳에서 인종차별에 항거한 연극으로 유명
해진 요하네스버그의 마켓 씨어터 등에 후원금을 보내어 감사를 표하고 그들을 격려했다.

이제 남아프리카 사람들 조차 베네통에 대하여 결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베네통의 제2의 광고 쿠데타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 표적은 걸프전을 일으킨 미국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숨어서 쉬쉬하기만 했던 에이즈였다
(다음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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