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6장 입니다.
15장에 이어서 계속해서 모압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고대했지만 그렇지 못하고 멸망의 길을 가는 모압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종은 가슴 아파하면 눈물을 흘립니다.
1. 하나님의 백성을 선대해야 합니다(1-4절).
모압은 이스라엘의 형제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언제나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습니다.
이스라엘이 강할때는 복종하는 듯 했지만 이스라엘이 약해지면
어김없이 잔인하고, 교활하고, 거만하게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출애급때부터, 포로에서 귀한한 후 성전 건축을 할때도 그들은 이스라엘의 가시노릇을 했습니다.
이사야는 이런 모압에게 간절히 충고하지만 그들은 이미 들을 귀를 가지도 있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도 하나님 택하신 성도들에 대한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집인 교회와 성직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진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한 어떤 정권도, 사람도, 하나님의 분노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교회를 선대 하십시요. 애써서 선대하십시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는 비결입니다.
2. 의의 나라(5절).
왜 하나님의 나라를 선대해야 합니까?
이스라엘은 왕위가 굳건하고, 왕은 존경받을 정치를 할 것이며,
백성들은 평등과 정의를 실천하는 국가를 건설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예언은 훗날 유다의 히스기야 왕조의 번영을 내다본 것입니다.
또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예언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흥왕할 것이니 세상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의 계획에 관심과 충성을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3. 모압의 비가(6-14절).
선지자의 충고에도 모압의 교만은 꺽일 줄을 모릅니다.
이 모압에 대해 3년 기한에 머물것이라는 치명적인 저주의 선고가 내려집니다.
무성한 나무 같았던 모압은 그 가지가 국경을 넘고, 그 뿌리가 바다에 이르지만
그러나 그 가지는 꺽이고 말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들의 포도원은 황폐해져 농부들의 노랫소리는 멈추었고,
저들의 우상을 향한 기도에는 응답이 없을 것이며,
앞으로 3년이 지나면 저들의 영화는 떨어지고
백성은 능욕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인 교회에 무관심 합니다.
그러나 저들의 영화도 얼마가지 못할 것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듭니다(벧전 1:24).
모든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공동체에 참여하십시요.
하나님의 은혜속에 살아 가십시요.
거룩한 공동체를 생각하시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사야 17장 입니다.
이사야는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1.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1-6절).
하나님의 심판의 눈은 아람의 수도 다메섹을 향한다.
아람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동맹하여 남왕국 유다를 공격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앗수르를 동원하셔서 아람을 정복하고
히스기야 왕 6년에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함락시키니
북 왕국 이스라엘 왕조는 끝나고 말았습니다.
멸망한 이스라엘의 형국은 추수를 끝내고 이삭마저 줍고 난 들녘처럼 적막하고,
추운 겨울 과일 나무가지에 몇개 남은 과일처럼 처량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손이 들려지면 아무리 사람들이 일을 도모하여도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2. 거룩하신 자를 바라보라 (7-11절).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거역하고
외교를 위해 이방 나라의 여인들과 혼인을 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들어온 우상을 섬기는 일이 온나라를 덮었지만
정작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때 우상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합니다.
나라는 망하고 백성들은 다 죽거나 흩어집니다.
흩어진 백성들은 회한의 눈물로 여호와를 바라봅니다.
3. 주께서 꾸짖으시리니 (12-14절).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여세를 몰아 예루살렘을 포위합니다.
그러나 앗수르는 18만 5천의 군사를 잃고
앗수르 왕 산헤립은 고국으로 돌아갔으나 아들들에 의해 암살당하고 맙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성을 지키시는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를 지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으며,
늘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사야 18장 입니다.
유다의 남쪽에 위치해 있었던 구스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 내용은
1. 유다를 찾아온 구스의 사신들에 대한 권면입니다. (1,2절)
그 사신들에게 이사야는 처음부터 '슬프다'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구스에 대한 동정심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구스는 노아의 아들 함의 맏아들의 이름 입니다.
그리고 그 자손들이 이룬 족속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그들의 영토는 이디오피아와 수단 그리고 소말리아를 포함할 만큼 광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당시 구스는 앗수르 때문에 외교적, 군사적인 면에서 큰 곤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와의 동맹을 위해 사신을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신들에게 이사야는 두려워 말고
고국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역사를 지켜볼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스가 원하는 동맹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지켜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사야의 믿음을 보여 주고 있기도 합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다면 그렇게 저들을 권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떠한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 믿음 때문에 다른 사람이 용기를 얻는지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앗수르의 멸망을 예언 합니다. (3-6절)
지상의 모든 거민이 앗수르의 멸말을 보게 될 것이라고(3절) 합니다.
전쟁은 사람이 하는 것 같지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당연히 승패도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앗수르의 멸망은 세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먼서 앗수르가 군사들을 모아 침공해 옵니다.
그때 하나님은 가만히 침묵하십니다.
마치 쬐이는 햇볕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다고 하십니다(4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실 때까지 침묵하며 조용히 참고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 당신의 계획을 한치의 차질도 없이
그리고 순간의 기다림도 없이 이루어 가십니다.
기억합시다.
내가 좋은 때, 내게 필요한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때 입니다.
3. 하나님께 돌아올 구스의 미래를 예언 합니다.(7절)
앗수르가 멸망하는 날 구스 사람들은 예물을 가지고 시온 산에 이르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에 구스는 자발적으로 하나님께로 나아와 예물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원하는 예배를 귀히 여기십니다.
나의 삶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깨달으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믿음안에서 승리하시길 빕니다.
이사야 19장 입니다.
애굽에 대한 멸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과 애굽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왔습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 입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한 이유는
작은 나라 이스라엘이 큰 나라 애굽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이스라엘이 애굽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의지하던 애굽이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에게 멸망을 경고하십니까?
1. 우상을 숭배했습니다(1-4절).
애굽은 하늘과 땅은 물론 애굽을 관통하여 흐르는 나일강,
수많은 짐승과 심지어 곤충까지도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섬기던 우상들이 파멸되면서
평안하다고 생각했던 애굽에 두려움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백성들과 심지어 군인들 조차 두려움에 떨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형제가 형제를 치는 내란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
또 저들이 아주 잔인한 왕에게 넘겨질 것인데,
당시 최고의 지혜자로 불리던 신접한 자와 술객들에게
그 어려움의 원인을 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시는 대로 애굽은 피라밋을 건축한 나라 입니다.
저들의 수학과 기하학 그리고 건축술은 당시 세계 최고였습니다.
지혜에 관한한 어느 민족에게도 지지 않는 그런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지혜는 분명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야 삽니다.
지혜의 근원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2. 그들의 산업을 의지했습니다(5-15절).
애굽은 수자원이 풍부한 나라 였습니다.
나일강 유역과 하류는 그야말로 천혜의 옥토였습니다.
농업, 수산업, 수공업이 눈부시게 발달했습니다.
하나님 보다 그 산업을 저들은 더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산업을 치시니
그 모든 산업이 파탄에 이르게 되는데 대책이 없었습니다.
마치 술 취한 자가 결정을 잘못하며 비틀거림과 같이
그렇게 애굽은 비틀거렸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지혜나 재주, 재물로 인하여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할 줄 알아야 합니다.
3.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경고하셨습니다 (16-25절).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백성이라 할찌라도 하나님께 돌아오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온 민족과 열방이 하나님을 경배하길 원하십니다.
돌아오면 용서해 주시고 받아 주십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의 징계 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유익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섬기시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사야 20장 입니다.
20장 말씀은 애굽을 의지하려는 유다 백성들의 세속적 경향에 관한 경고 입니다.
이사야서 전체를 놓고 볼 때 본문이 이곳에 배치된 것은 깊은 뜻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에 언급된 네 나라, 즉 앗수르, 불레셋, 구스, 그리고 애굽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이 네 나라와 유다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쉽게 생각해 보면 애굽과 구스를 믿고 앗수르에 대항하다가 멸망당한
불레셋의 전철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과 애굽은 매우 가깝게 지내는 사이 입니다.
오늘날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비교적 가깝게 지내는 나라는 이집트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애굽을 의지하려는 태도'는 다른 말로
눈에 보이는 '세상의 힘'을 의지하려는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에 처하면 자기보다 강한 사람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눈에 보이는 세상의 힘이 아니라
참된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세상의 눈에 보이는 힘이란 무엇일까요?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돈, 권력, 배경, 가문, 친구
거기다가 우리 나라 사람들은 출신지와 졸업한 학교도 많이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의 힘을 의지한다면 결국은 실패와 절망을 겪게 될 것입니다.
1. 이사야가 행한 특이한 행동의 의미 (3절).
1절의 하나님의 명령을 쫓아 이사야는 3년 동안이나
벗을 발과 벗은 몸으로 행할 것인데 (대략 B.C. 713-711년 경)
이것은 전쟁 포로들이 잡혀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의 첫째 의미는 애굽이 이렇게 포로로 잡혀 가리라는 것과
둘째 의미는 애굽을 의지하면 이런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사실 입니다.
세상의 힘이나 사람의 힘을 의지하지 마십시요.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요.
거기에 구원의 길이 있으며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http://sahnsem.com by Pastor Joseph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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