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pirit/e—cr—life

한겨레의 착한 본성

by e-bluespirit 2009. 11. 28.

 

 

 

 

 

 

 

 

 

재단법인 씨알

2009년 11월27일 금요일 제222호

 

 < 한겨레의 착한 본성 >

우리가 하늘에서 받아 가지고 온,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흥안령을 넘기 전부터
가슴 속 깊이 간수하고 길러온
이 착한 바탕이

미래의 세계 역사에 있어서,
하려고만 한다면
큰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오랜 고난 중에서
이 아름다운 천성은 많이 상한 점도 없지 않다.
마음에 믿으면 살아나 크는 것이고,
스스로 의심하면 죽어 없어진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인(仁)’한 사람임을 믿어야 한다. 그것은 그렇게 쉬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민족적 성격이 되기까지에는 길고 긴 세월이 들어서 된 것이다. 거기 비하면
아직 삼국시대 이후 천 오백년은 아무것도 아니다. 낙심할 것 없다. 우리가 가만히 손을 대어 보면, 이 상한 가슴 밑에 오히려 ‘인’의 일맥이 할딱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뜻으로 본 한국역사. 324쪽 -

< 풀이 >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과 정의를 추구하는 착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 특히 한국 사람은 오랜 역사 속에서 밝고 따뜻한 삶을 지향하고 평화롭게 더불어 사는 전통을 이어왔다. 재난이 닥쳤을 때 서로 돕고 살리는 일에 한국인들은 기꺼이 앞장선다. 피난을 가는 열차 안에서 먹을 게 부족한 상황에서도 음식을 서로 권하며 나누어먹었다. 우리만이 착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착각이거나 유치한 우월감이다. 그러나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착한 맘의 싹을 스스로 키우고 살려 가면, 정말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착한 맘을 키워가는 일에서는 다른 민족들과 아무리 경쟁을 해도 잘못됨이 없을 것이다.

- 박재순 -

 

 

 

 

 < 한국 기독교와 근대화의 과제 >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올 때
한국을 건지기 위하여 맡은 과제는 셋이었다.

첫째는 계급주의를 깨뜨리는 일이요,
둘째는 사대사상을 쓸어버리는 일이요,
셋째는 숙명론의 미신을 없애는 일이었다.

- 뜻으로 본 한국역사. 369쪽 -

 

< 풀이 >

한국의 근대화과정에서 기독교가 들어왔다. 한국 근대화의 과제는 계급주의, 사대사상, 숙명론(미신)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한국기독교는 기득권세력과 결합되었고, 강대국인 미국을 추종했고 맹목적인 교리신앙과 문자적인 성서해석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근대화의 과제를 충실히 풀었다고 할 수 없다. 아직 한국사회에서는 특권의식과 관행이 엄존하고, 서구사상과 문화가 지배하고 점쟁이가 80만 명이 넘는다. 민주화와 산업화가 이룩되었다고 하나 정신과 철학은 근대화 이전에 있다.

- 박재순 -



< 영원한 생명의 줄 >

우리 앞에는
영원한 생명인 정신의 줄(絲)
곧 얼(靈) 줄이 늘 늘어져 있다.

이 우주에는 도(道)라 해도 좋고,
법(法)이라 해도 좋은 얼 줄이
백년이 가도 천년이 가도 드리워져 있다.

우리는 이 얼 줄을 버릴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다.
이 한 얼 줄을 잡고 좇아 살아야 한다.

 - 씨알의 메아리 17쪽 -

 

< 풀이 >

물질의 유혹이나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정신을 차리면 영원한 생명의 줄을 볼 수 있다. 나와 너와 그가 함께 살 수 있는 생명줄이 언제 어디나 있다. 나라가 살고 민족이 살고 인류가 살고 자연생태계가 모두 살 수 있는 생명과 정신의 줄이 눈앞에 드리워 있다. 다만 사람들이 보지 않으려고 외면하고 눈을 감기 때문에 생명의 줄이 뵈지 않고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남을 죽이고라도 저만 살자는 사람의 눈에는 생명의 줄이 보이지 않는다. 산다는 것은 생명과 정신의 줄을 든든히 붙잡는 것이다.

- 박재순 -

 

< 너 좋으면 좋다 >

‘너 좋으면 좋다’는 말이 만일 절대자에게 쓰여진다면 그것은 좋다.
이 때는 한아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절대신앙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절대자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을 이 세상에다 썼다면
그것은 한아님을 도적하는 짓(越權)이며
한아님을 대수롭지 않게 내던지는 것이 된다.

- 씨알의 메아리 16쪽 -

 

< 풀이 >

“나만 좋으면 좋다”면서 사는 사람이 가장 많지 않을까? 그래도 양심적이고 착한 사람이 “너 좋으면 좋다”고 말하면서 사는 것 같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야 아무래도 좋고 너만 좋다면 나는 괜찮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잘못이라고 유영모는 말한다. “너 좋으면 좋다”는 말을 쓸 수 있는 대상은 절대 한아님 한분뿐이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에게 “너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것은 한아님을 도적하는 짓이고 한아님을 무시하는 짓이다.

- 박재순 -

 

 

고유번호 : 201-82-05996,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 91 대양빌딩 1203호
재단법인 씨알(CR Foundaion)) 이사장 김원호
Tel : 02-2279-5157  E-mail : crlife@hanmail.net
Copyright ⓒ 2007 CR Foundation  All rights reserved

 

 

 

 

 

 

 

 

 

 

 

www.crlife.org

'Spirit > e—cr—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을 머리에 이고  (0) 2009.12.21
자기를 이기지 못하면  (0) 2009.12.06
새로움  (0) 2009.11.15
내 속에 태초의 창조를 위한 혼돈이 있다  (0) 2009.11.05
우러러 하늘 트고 잠겨서 땅 뚫었네   (0) 2009.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