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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절대의 자리

by e-bluespirit 2011. 8. 8.

 

 

 

 

 

 

 

 

 

 

 

 

< 절대의 자리 >

‘참’은 하나(一)다.
이 하나는 둘이 아닌 절대이다.

절대의 자리는 있다 없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절대의 자리에서는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아니다.

절대는 유무를 내포하면서 초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절대존재인 하나님을 찾고 싶고 느끼고 싶다.

유일불이(唯一不二)의 절대존재를
누구보다 먼저 모시고 싶고 섬기고 싶다.

우리는 절대존재인 절대진리를 찾는 게 아니다.
본래 내가 가지고 있는 원일(元一)의 님이다.

-『다석어록』 62쪽 -

 

 

< 풀이 >
너를 오직 너로 보려면 너의 자리에서 너를 보아야 한다. 그것이 참되게 보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너의 자리에서 너를 볼 수 있는가?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의 자리에 이르러야 한다. 하나의 자리는 상대를 뛰어넘는 절대의 자리다. 그것은 있고 없고 살고 죽고를 뛰어넘은 영원한 생명의 자리다. 거기가 바로 하나님이 계신 자리다. 하나 됨의 절대 자리는 사람이 찾아야 하는 것이면서 사람마다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를 찾는 존재이면서 하나를 품은 존재다.

 

 

 


< 씨알의 운명 >

자연의 변괴에서 죽은 가운데서도 그래도 다시 일어나
또 낳고 또 살고 또 죽이우면서도

뼈 빠지게 일해서 나와 원수를 다 먹여 살리는 것이
씨알의 운명이듯이,

역사의 악 시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씨알은
원망·짜증 없이 견디고 또 지어내어 전체를 섬겨야 합니다.

내 일이요 전체의 삶이요
마땅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짐은 무겁고 길은 멀고”, 함석헌전집 8권 97쪽 -

 

 

< 풀이 >
자연의 재난이나 역사의 재난이 일어나면 가장 큰 희생을 치르는 것은 보통 사람인 씨알이다.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굶주리고 목숨을 잃는다. 그래도 씨알은 다시 일어나 삶의 터전을 일구고 길을 닦고 농사를 짓고 옷감을 짜고 상품을 만들어낸다. 자기만을 위해서 농사짓고, 길 닦고 물건 만드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생명과 역사의 씨알인 사람은 생명과 역사의 짐을 지고 생명과 역사를 살리는 일을 한다. 좋은 때나 나쁜 때나 원망, 짜증 없이 씨알은 전체를 섬기는 일을 해야 한다. 그 일이 내 일이고 전체를 사는 삶이고 마땅한 길이기 때문이다.

 

 


< 믿을 것은 >

상대적인 것은 일체 믿을 것이 못된다.
상대적 존재는 없다가 있어지고 있다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믿을 것은
변하지 않는 빔(허공)과 얼(성령)인 절대 하나의 님뿐이다.

그런데 하나밖에 무엇이 많아 복잡하다.
그러므로 절대존재 하나만 믿고 갈 수밖에 길이 없다.

하나를 잡으러 올라가는 것뿐이다.
그러기 위해

몸이 지닌 탐진치의 수성(獸性)을 이기어
위로 올라가야 한다.

-『다석어록』 64쪽 -

 

 

< 풀이 >
변하는 것은 믿을 수 없다. 세상에는 변치 않을 것이 없다. 세상에 믿을 것이 없다. 있다가 없어지고 살다가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믿지 못할 것을 믿다가는 그것과 함께 썩고 만다. 변하지 않는 것은 빔과 얼이고 빔과 얼의 주인이 절대 하나인 하나님이다. 살려면 하나를 잡아야 한다. 하나를 잡으려면 빔과 얼의 자리인 하늘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올라가려면 탐진치의 짐승성질을 이기고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는 만큼 자유롭고 기쁘고 보람차다.

 

 

< 건방진 기술 인간의 반성 >

생각에 달렸습니다.

나쁜 날씨가 좋은 것은 아니나,
그로 인해 대자연을 잊고 교만에 빠진 인간이
저를 좀 반성하게 된다면 도리어 다행입니다.

이 건방진 기술 인간, 꾀의 인간은
천재지변이나 있어야
겨우 이웃을 알고 전체를 생각하며,

제 속에 할딱이는 양심이 있고
아득한 저 밖에 엄연히 보는 눈이 있는 것을 느끼지,

그렇지 않으면
그저 제 만든 소꿉터에서 까불고 돌아가다가
저만 망할 뿐 아니라
불을 놓아 세계를 망치고 말 것입니다.

-“짐은 무겁고 길은 멀고”, 함석헌전집 8권 96~7쪽 -

 

 

< 풀이 >

즐거운 감정이나 불쾌한 감정이나 감정은 깊은 것이 아니다. 그런 감정은 생명이 물질에 닿아서 생명의 표면에서 나오는 것이다. 수십 억 년 생명진화의 과정에서 형성된 인간의 생명은 자연 생명 전체 속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우주 생명 전체의 님과 마주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생각하는 이성이 있고 자기를 넘어서는 양심이 있어서 생명의 깊은 뿌리를 느낄 수 있고 전체 생명의 님을 알 수 있다.
제 감정에 빠져서 저밖에 모르는 인간이 궂은 날씨나 천재지변을 만나서 이웃을 알고 전체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전체 생명을 잊고 쾌락과 향락에 빠진 현대문명은 전체 사회와 자연 생명을 파멸로 몰아넣고 있다.

 

 

 

< 억울한 고생 >

정치는
회오리바람이라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오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씨알은 작아도
전체가 그 속에 있고
영원이 그 궤도입니다.

상관 말고 내 할 것을 할 따름입니다.
그것이 스스로 삶이요 마땅의 걸음입니다.

씨알이 억울한 고생을 하는 것은
그만이 역사의 주인이요
우주진화의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짐은 무겁고 길은 멀고”, 함석헌전집 8권 97쪽 -

 

 

< 풀이 >
역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지나가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정치는 한 때 일어난 것이다. 정치 사건이 아무리 큰 것처럼 보여도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씨알로 사는 사람은 작아도 속에 전체를 품고 있고 뜻하고 사는 길이 영원을 향해 있다.
전체가 영원히 사는 길을 가는 씨알은 역사의 주인으로서 우주의 생명진화를 완성하는 길을 가고 있다. 제 잇속만 차리고 제 살림만 늘리려는 사나운 인간들 틈에서 씨알의 삶을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겪기 마련이다. 그런 줄 알고 살아야 한다.

 

-박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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