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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보고 듣고 만지는 하나님

by e-bluespirit 2011. 9. 26.

 

 

 

 

 

 

 

 

 

 

 

 

< 보고 듣고 만지는 하나님 >

하나님이야말로 누구나
볼 수 있게
들을 수 있게
만질 수 있게 계십니다.

모든 유(有)를 내놓고 또 어디서
따로 무(無)라는 세계가 있는 것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계, 그 중에서도 특히 인간을 통해서만
하나님, 진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有)도 아니요 무(無)도 아니요, 믿음으로 계시는 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허허막막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문제 아니라
우리끼리의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첫 가을 소식”, 함석헌전집 8권 19쪽 -

 

 

< 풀이 >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체험되는 존재다. 하나님을 내 머리에서 이해하고 가슴에서 느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과 일을 통해서 느껴지고 경험되는 하나님이라야 산 하나님이다. 있음과 없음을 갈라서 생각하면 사변적인 관념의 세계에 빠진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부딪치는 자리에서 일과 일이 돌아가는 과정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보고 듣고 만지는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누구를 만나거나 무슨 일을 하거나 온 몸과 맘을 다 해 살 때만 “아!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하고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 -박재순-

 

< 들이쳐야 깨닫는다 >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요 사명이다.
제나에서 얼나로 솟나는 것이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 나라는 들이치는 자가 들어간다고 했다.
들이쳐야 깨닫는다는 말이다.

형이상의 얼나를 들이치는 길은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침략해도 좋다고 언제나 열려 있다.

우리는 앞장서서 하나님 나라로 쳐들어가야(깨달아야) 한다.

『다석어록』70쪽

 

 

 

< 풀이 >
사람은 하늘로 솟아오를 존재다. 그래서 머리를 하늘에 두고 하늘의 님을 그리워하고 부른다. 하늘나라가 하나님 나라요 정의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영원한 나라다. 어떻게 하늘로 솟아오르는가? 몸에서 맘이 솟고 맘에서 얼이 솟아올라야 한다. 얼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이 깨닫는 것이다. 하늘은 한없이 높고 커서 아무리 들이치고 올라가도 좁지 않고 아무리 많은 사람이 쳐들어가도 끝이 없다. 다른 일은 몰라도 이 일만은 아무리 경쟁해도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 -박재순-

 

 

 

< 남이란 없다 >

우리의 머리 위에 계셔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을 모시는 아들은
큰나(大我)요 참나(眞我)라
남을 해칠 것도 없고 요구할 것도 없다.

남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유다.
남이 있으면 자유에 제한을 받게 된다.

『다석어록』68~69쪽

 

 

< 풀이 >
사람의 머리 위에 있는 것은 하나님뿐이다. 하나님만이 서로 다른 모든 사람을 하나되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모신 사람은 하나님의 심정과 뜻으로 살기 때문에 전체의 큰 나, 참 나가 될 수 있다. 큰 나가 되면 남이란 없다. 남이 없기 때문에 제한 없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남이 없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무슨 일에나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이 세상에서 나와 무관한 사람 나와 무관한 일은 없다.

-박재순-

 

 

< 씨알은 하나면서 여럿이다 >


씨알은 하나면서 여럿이요,
여럿이면서 하나입니다.

거기 씨알의 생명이 있고,
힘이 있고, 지혜가 있습니다.

하나이기 위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여럿이기 위해 서로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하고 사랑하기 위해
서로 믿어야 합니다.

믿으면 하나입니다.
살았습니다.

믿지 않으면 헤졌습니다.
죽었습니다.

-“첫 가을 소식”, 함석헌전집 8권 18쪽 -


 

 

< 풀이 >
생명은 내적 통일을 이루면서 서로 다른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서로 다름의 다양성과 하나 됨의 통일성이 생명의 본성과 특징이다. 씨알은 생명의 씨알맹이를 지니고 그 씨알맹이를 싹트고 피우는 존재다. 씨알은 서로 다름 속에서 하나 됨을 드러내는 존재다. 어떻게 서로 다르면서 하나 됨에 이를 수 있을까? 평면의 논리로만 따지면 서로 다름과 하나 됨은 공존할 수 없다. 생명과 정신은 입체의 세계라 입체의 논리가 요구된다. 하나 되려면 사랑해야 하고 서로 다름을 존중하려면 겸손해야 한다. 겸손하고 사랑하려면 서로 믿어야 한다. 서로 다름과 하나 됨의 입체 세계로 들어가려면 믿음이 요구된다. 믿으면 하나의 산 세계가 열린다. -박재순-

 

 

< 권력자를 위해 권력자와 싸운다 >

이치에 어그러지는 압박을 받고 그대로 참기만 하면
나는 비록 이치를 어기지 않았다 하더라도

저쪽을 이치를 깨달을 가능성이 아주 없는
짐승으로 대접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면 내 이치는 죽은 이치가 돼 버리고 맙니다.

저쪽을 사람으로 인정해야 내가 사람이 되는데

저쪽을 사람으로 인정하려면
그가 깨달을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잘못은 언제나 나와 그 사이의 상관적인 것이지
결코 그만의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바로 잡으려면
그와 더불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권력 없는 내가 권력 있는 그와 싸우려면
내가 고통을 당할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러나 나와 그를 사람으로 건지기 위하여
또 전체를 건지기 위하여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함석헌 전집8권 14쪽 -

 

 

< 풀이 >
함석헌은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면서도 적을 사람으로 인정하고 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싸웠다. 이치에 어그러지는 불의한 짓을 하는 사람이나 그 불의한 짓을 당하는 사람 모두 사람답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사람이 되려면 불의한 짓을 하는 사람이 불의한 짓을 하지 못하게 불의한 사람과 맞서 싸워야 한다. 이치에 어그러지는 불의한 짓을 당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사람 되기를 포기한 것이다. 불의한 짓은 사람답지 못한 짓이다. 불의한 사람과 맞서 싸우는 일은 불의한 일을 당한 내가 사람 되는 일이면서 불의한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일이다. 이치에 어긋난 짓을 하는 사람을 그대로 두거나 그런 사람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람으로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이치를 모르는 짐승 취급하는 것이다.
불의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과 싸우면 고통을 겪게 마련이다.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것이 참과 옳음을 세우는 길이고 사람 되는 길이고 더불어 사는 길이고 전체를 살리는 길이다.그렇기 때문에 불의한 권력에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박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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