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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없이 있는 사람

by e-bluespirit 2011. 10. 16.

 

 

 

 

 

 

 

 

 

 

 

 

< 없이 있는 사람 >

하나님은 없이 계시는 이다.
하나님은 없으면서 계신다.

사람은 있으면서 없다.
있긴 있는데 업신여긴다.

그래서 우리는
이게 슬퍼서

어떻게 우리 아버지처럼
없이 있어 볼까 하고 힘쓰는 것이다.


『다석어록』75쪽.

 

 

< 풀이 >
하나님은 물질적으로는 없는데 영적으로는 있다. 흔히 사람은 몸으로는 있는데 영으로는 없는 것과 같다. 사람은 있기는 있는데 서로 없는 것처럼 여기고 살지 않는가? ‘없’이 여기는 것은 업신여기는 것이다. 말로는 존중한다고 아첨하지만 실제로는 업신여기며 산다.

다석은 서로 업신여기며 사는 게 슬퍼서 몸이나 물질, 돈이나 권력으로는 없이 살면서 얼로는 ‘있어’ 보려고 힘쓰며 살았다. 가난 속에서 부유하고 낮음 속에서 높고 없음 속에서 충만 하려고 했다.

 

 

 

< 등힘받힘 >

전지전능자(하나님)을
등힘받침(back)으로 모신다면 아무 걱정 없다.

나는 전지전능자를 등힘받침으로 두었으니
너희도 그래 보라는 것이 전도요 증거함이다.

『다석어록』73쪽.

 

 

 

< 풀이 >
힘 있는 사람이 뒤를 봐 줄 때 든든한 ‘빽’이 있다고 한다. 요즈음은 잘 쓰지 않는 말인데 30년 전 쯤에는 흔히 쓰던 말이다. 다석은 전지전능자 하나님을 등힘받힘으로 모시고 살자고 한다. ‘빽’을 ‘등힘받힘’으로 옮기니 알기 쉽다. 하나님을 등힘받침으로 모시고 살면 아무 걱정이 없고, 자유자족하다. 돈, 권력, 조직, 사람에게 의지하면 근심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이런 것 없이 살 수는 없다. 그러나 거기 기대지 않고 사는 게 믿음이고 자유다. 돈이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하고 사는 것이 진리를 전하는 것이고 증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돈도 사람도 조직도 제 구실을 할 것이다.

 

 

 

< 목숨 걸고 인간을 믿자 >

믿지 못할 인간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내 안에도 남의 안에도 믿는 일입니다.

각오하지 않고는 인간을 믿을 수 없는데
그것을 할 때는 벌써 죽음이 죽음 아닌 것을,
즉 죽음 이상의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니겠습니까?

-“첫 가을 소식”, 함석헌전집 8권 20쪽 -

 

 

< 풀이 >
믿지 못할 인간을 믿는 것은 믿지 못할 인간에게 나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손해 볼뿐 아니라 죽을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남을 믿을 수 없다. 믿지 못할 인간을 믿는다는 것은 내 밖으로 나를 던지는 것이다. 나를 내 밖으로 던지는 것은 내 안에도 남의 안에도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물질적인 이해관계나 몸이 살고 죽는 것을 넘어서서 산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물질이 아닌 것을 믿고 죽어도 죽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것은 몸에 매인 자아가 죽고 몸에서 자유로운 얼의 나가 살아난 다음에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죽어도 죽지 않는 것, 죽어야만 살아나는 것, 그것이 얼이고 그것이 하나님이다.

 

 

 

< 하나님은 왜 인간사회에서 자취를 감추었나? >

사람이 사람을 믿는 사회였을 때 종교도 살았고 문화도 살았습니다.

그러나 종교를 믿는다 하면서도 물질주의 개인주의로 기울어져
사람이 전체 사회를 떠나서도 살 수 있는 것같이 생각하고
사람을 학대했을 때 하나님은 인간사회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사회는 모래더미같이 돼버렸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고는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을 믿어도
그것이 아무 힘없는 빈 말인 것을
우리는 이제는 눈을 감고도 알이 만큼 환해졌습니다.

-“첫 가을 소식”, 함석헌전집 8권 19~20쪽 -

 

 

< 풀이 >
사람은 작고 불완전한 존재지만 스스로 하는 주체이면서 전체 하나를 추구하는 존재다. 주체인 ‘나’로서 나답게 살면서 전체 하나에 이르려 한다. 사람이 주체임을 인정하고 전체 하나를 추구하는 존재임을 믿어줘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사람으로 뵈고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한다.
사람이 사람을 믿을 때 개인도 살고 공동체도 살아난다. 그럴 때 삶의 알맹이를 찾는 종교도 살고 삶을 표현하는 문화도 살아 있다. 종교는 삶의 깊이에서 살 힘을 주고 삶 전체를 하나 되게 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물질주의·개인주의는 삶의 표면과 부분에 집착하는 것이다. 종교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물질주의·개인주의에 빠지면 사람이 주체이면서 전체를 품은 존재임을 잊고 사람을 무시하고 학대 하게 된다. 사람의 속의 속에 계신 하나님은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고 사람은 물건처럼 되고 사회는 끊어진 실오라기처럼, 죽은 모래더미처럼 되고 만다. 믿고 사랑한다면서 사람을 무시하고 학대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거나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이다.

 

 

 

 

< 없이 계신 하나님 >

우리의 생명이 피어 한없이 넓어지면 빔에 다다를 것이다.
곧 없이 계시는 얼나로 영생하는 것이다.

빔은 맨 처음이 됨으로
모든 생명의 근원이요,
일체만물의 근원이다.
곧 하나님이시다.

나도 인격적인 하나님을 생각한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지만
사람 같은 인격은 아니라 신격이다.

내가 말하는 인격이란
‘있·없(有無)’을 초월한 신격으로
전체인 맨 처음이란 뜻이다.
하나님을 찾는데 물질에 만족하면 안 된다.

있는 것에 만족 못하니까
없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없이 계신다.

『다석어록』72쪽.

 

 

< 풀이 >
움켜쥐려고만 하면 삶과 정신은 오그라들고, 피고 펴서 한없이 넓어지면 빔에 다다른다. 삶은 신비라서 움켜쥘수록 쪼그라들고, 놓고 펴면 가득 찬다. 모든 것은 빔에서 나와 빔으로 간다. 없다가 있고 있다가 없기 때문이다. 빔이 맨 처음이고 모든 생명, 일체만물의 근원이다. 다석은 빔을 인격적으로 이해한다. 빔 속에 얼이 있고 신이 있기 때문이다. 논리와 법칙, 인과관계만을 따지는 이성만으로 보면 빔은 죽은 것이나 정신과 얼로 보면 산 것이고 신령한 것이다. 물질로만 보면 우주는 죽은 것이나 생명과 정신으로 보면 우주는 산 것이다. 밤하늘의 찬란한 별들을 보면 죽은 우주가 아니라 산 우주임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 참 나 >

하나님은 종당엔 참 나다.
나가 있으니 하나님도 계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나는 참나의 그림자와 같기 때문이다.
참나가 없으면 이 나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거짓 나인 제나에 사로잡혀
큰 나요 참나인 하나님을 멀게 생각한다.


『다석어록』71쪽.

 

 

< 풀이 >
다석은 ‘나’를 일관성 있게 강조한 사상가다. 얼에 나를 붙여 ‘얼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나’에 집중하는 것을 나타낸다. 거짓 나와 참나를 구별하고 거짓 나를 버리고 참나인 얼나를 찾는 것이 사람의 목적이다. 다석은 하나님도 참나라고 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참나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이 “나는 나다!”고 했으니 하나님은 참나다. 스스로 자유로운 나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가 된다. 나를 나이게 하는 이가 참나인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거짓 나에 사로잡히면 참나인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거짓 나에서 벗어나면 내가 나가 되고 너도 그도 나가 되며 하나님이 드러나 보인다. -박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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