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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신앙과 추리

by e-bluespirit 2012. 11. 10.












< 신앙과 추리 > 

신앙에 추리(推理)하는 사색(思索)없이는 안 된다. 
추리하는 동안에 생각이 발전한다. 

밀(推)어서 밑(本)을 보는 게 믿(信)음이다. 
마침내 밑(本)이 훤하게 터지면 아버지께 다다른다. 

다석 어록 91~92쪽

< 풀이 >
신앙은 신비한 감정만이 아니다. 이성의 추리와 사색이 뒷받침되지 않는 신앙과 영성은 공허한 것이다. 이성적 추리와 사색이 없는 감정뿐인 신앙은 허깨비 같고 신기루 같은 것이라 허망하다. 맑은 이성으로 추리하고 사색함으로써 감정으로 엉킨 감성을 뚫고, 개념과 논리로 얽힌 지성을 뚫고, 감정과 의식(意識)이 뒤섞인 영성을 뚫어서 맑고 깊은 영성에 이르러야 한다. 
추리는 생각을 밀어나가는 것이다. 생각을 밀고 밀어서 인간의 본성인 밑을 뚫고 뚫으면 감성과 이성과 영성이 뚫려서 하나님 아버지께 이른다. 어린아이 때나 원시시대에는 본능적 감성과 영성이 혼합되어 있다.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추리하고 생각함으로써 감성과 영성 사이에 이성이 있어서 감성은 감성대로 이성은 이성대로 영성은 영성대로 실현되고 완성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신앙이고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고 사람이 사람으로 되는 것이다. -박재순 






< 나는 바다의 아들 >   


                                                                                          함석헌


나는 바다의 아들, 바닷가에 난 몸 거품지는 황해 바다 날뛰는 큰 결의 
밤낮없이 흔드는 요람 속에서 맘대로 발버둥을 치며 자라났노라

나는 바다의 아들, 바다가 좋아 얽매일 줄 모르는 그 성미만 좋아
시드는 가을 풀처럼 육지에 말라붙는 겁쟁이 사람의 자식들의 꼴이 보기 싫여 

나는 산의 아들, 봉 위에 자란 마음 비바람 발밑에 듣는 다섯 뫼 푸른 봉의 
억만고 변함없는 푸른 솔의 노래 곡조를 기운껏 맞춰 부르며 자라났노라

나는 산의 아들, 산이 좋아 높고도 맑은 그 맘만 좋아
파먹는 버러지처럼 평지에 우물거리는 비루한 사람의 자식들의 뜻이 가엾어 

나는 하늘의 아들, 하늘가에 나는 영 푸른 별조차 없는 아슬한 궁창에
거침없이 오고 가는 바람을 따라 세계껏 나래를 치며 살아가노라

나는 하늘의 아들, 하늘이 좋아 영원무궁한 그 기운만이 좋아
썩어지는 티끌처럼 일고 꺼지는 답답한 이 세계의 그림자를 몬 견대 못 견대 


< 풀이 >
여섯 연의 시는 둘씩 짝을 지어 바다, 산, 하늘을 주제로 셋으로 나뉘어 있다. 함석헌은 한반도 북서쪽 끄트머리 서해 바닷가에 나서 자랐다. 그래서 스스로 바다의 아들이라고 했다. 황해 바다 날뛰는 큰 물결이 밤낮 없이 흔드는 요람 속에서“맘대로 발버둥 치며 자라났노라”고 했다. 바다는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지니고 있다. 바다는 한 없이 깊고 고요하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격동적이다. 함석헌의 자유혼은 얽매일 줄 모르는 바다의 성격을 닮은 것이다. 시드는 가을 풀처럼 육지에 말라붙는 겁쟁이들이 보기 싫었던 함석헌은 절망을 모르는 바다처럼 평생 자유롭고 힘차게 살았다. 

함석헌은 오산(五山) 학교에서 공부했다. 안창호와 이승훈의 교육정신에 따라 설립된 오산학교는 일제 식민통치의 고통 속에서 더욱 꿋꿋하고 세월이 갈수록 더욱 푸르른 정신을 가르쳤다. 소설가 황순원이 오산학교에서 늙은 이승훈을 보고 “남자가 늙어서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깨닫고는 평생 이승훈을 마음의 별로 삼았다. 함석헌은 오산에서 영원히 늙지 않는 젊은 정신을 배웠다. 함석헌은 80평생 젊게 살았다. 

함석헌은 일찍이 신앙정신을 배워 하늘의 아들로 살았다. 하늘 바람을 마시며 하늘을 품고 하늘의 정신으로 살았다. 하늘을 오가는 자유로운 바람을 따라 자유롭게 살았다. 하늘은 한없이 깊고 한없이 높고 한없이 크다. 지구는 하늘의 품에 안긴 작은 티끌 같은 것이다. 하늘을 품은 사람은 지구를 가슴에 품고 산다. 지구를 품고 사는 사람에게는 절망과 체념이 없다. 돈과 권력을 쫓는 세상일은 썩어지는 티끌처럼 일어나고 꺼지는 욕망과 허영의 그림자 같은 것이다. 욕망과 허영의 그림자 같은 삶에 만족하지 못했던 그는 하늘의 무궁한 힘으로 늘 새롭게 솟아오르는 삶을 살았다. -박재순 






글을 배우는 목적


교육은 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글이란 무엇인가? 글은 ‘긋다, 그리다’에서 온 말이다. 무엇이 그리워서 긋고 그린 것이 글이 되었다. 인문학(人文學)은 사람이 곧 글이라는 뜻과 글을 통해서 사람이 된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인문학(人文學)은 글(文)에서 사람이 되는 것을 배우는 학문이다. 

글은 사람의 속에 있는 깊고 간절한 생각을 표현한 것이고 글에는 사람의 정신과 품격이 담겨 있다. 따라서 글은 글을 쓰는 사람의 사람 됨, 품격을 나타낸다. 글을 쓰면서 글을 다듬고 닦아내서 참된 글을 만들어내는 것은 곧 자신의 인격과 됨됨이를 만드는 것이다. 글이 사람이고 사람이 글이다. 

또 사람이 글을 읽고 글을 마음에 품고 글 속에서 삶으로써 몸과 맘과 생각을 닦고 씻어서 참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글을 통해서 참 사람을 만나고 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유영모는 ‘글’에서 ‘그(그이)를’, ‘그리는’을 보고 ‘글’은 ‘그를 그리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그(그이)’는 나와 너, 우리와 너희가 함께 기리고 믿고 받드는 ‘참 사람’이다. ‘그이’는 이기심과 당파심을 벗어난 참 사람이다. 글을 읽고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글에서 그이를 그리워하고 그이를 만나고 그이를 배워서 그이가 되자는 것이다. 

글은 참 사람 그이를 그리워하고 그이를 만나고 그이가 되자는 것이다. 글을 읽고 가르치는 사람은 적어도 글을 가르칠 때만은 탐심과 사심을 버리고 당파심과 종파심을 넘어서 참 나로서 전체 심으로 그이가 되어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가르쳐야 배우는 이가 그이를 그리워하고 그이를 만나고 그이가 될 수 있다. -박재순









구경각(究竟覺)


구경각은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궁극적인 최고의 깨달음을 뜻한다. 마음이 하나로 되는 깨달음 이상의 깨달음이 없는 거 같다. 내 마음이 네 마음이고 네 마음이 내 마음이라는 깨달음이 구경각이라고 생각한다. 노자, 공자 예수 석가의 깨달음이 다 그렇다. 그것이 깨달음의 최고 경지다.

최제우도 굶주림과 질병으로 신음하는 민중의 심정과 처지를 헤아리며 고생고생하며 도를 찾다가 마지막에 신의 계시를 받고 동학을 창도했다. 그 때 받은 신의 계시가 “내 마음이 네 마음”(吾心而汝心)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최제우의 마음이다. “내 마음이 네 마음과 다르지 않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민중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이 최제우의 마음이다. 사람마다 마음 속에 천주를 모시고 있다. 시천주(侍天主). 사람마다 마음 속에 하나님을 모셨기 때문에 모두가 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자유롭고 평등이다.

예수도 “나도 하느님의 아들이고 너희도 하느님의 아들/딸”이라고 선언했다 어버이 하나님 안에서 한 마음이고 모두 한 형제자매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부르고 믿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함석헌은 예수를 가리켜 “너를 나라고 한 이”라고 하였다. 예수는 소외 받고 고통당하는 민중의 마음으로 살고 세리와 창녀를 ‘나’로 알고 산 이다.

하나님이란 내 마음이 네 마음이 될 수 있는 ‘하나 됨’, ‘하나 임’이다. 모든 생명체,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데, 서로 다른 것이 하나가 되는 것, 너와 나를 소통하게 하는 것 통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고 서로 다른 것이 서로 통할 때 하나님이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것이 하나로 통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전태일도 굶주리고 병든 어린 여공들의 마음을 제 마음으로 느끼고 산 이다. 죽음을 앞두고 친구들을 ‘또 다른 나’로 부르면서 자신이 못 다 한 삶을 살아주고 자신이 못 다한 일을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 박 재 순 -





무명독립군길(서울 현충원) 결과보고 /순례일 11.3 토


11월3일 광주학생운동기념일 날 우리는 고즈넉한 도심의 숲길을 걷기에 앞서 먼저 현충원 대한독립군무명용사 위령비에 헌화를 하고 오늘 우리나라 독립과 번영의 초석이 된 그들 씨알용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렸습니다. 위령비는 임정요원묘역 위에 서 있습니다. 이곳에서 조망하는 한강과 남산이 어울어진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현충원 뒤 서달공원에서 생태다리를 건너 까치산근린공원으로 접어들자 화려한 강남 시가지를 품고 있는 구룡산과 대모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숲길을 따라가면 관악산에 다다르며 우리 순례길이 남부순환로에 가로놓여 있는 관악까치자연길에서 끝나게 됩니다. 

공원의 숲길에는 곳곳에 벤치와 정자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까치산근린공원의 정자에서 함인숙씨알의 인도로 명상의 기간을 가졌습니다. 명상과 몰입에서 참생각이 나옵니다. 참생각하는 씨알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명상하며 기도하고, 기도하며 명상합니다. 참된 생각이 우리를 살립니다. 우리를 깨달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재섭씨알이 불교의 오관게와 명상방법을 해설하였습니다. 다석이 이 세상 가장 훌륭한 식사기도는 불교의 오관게라 하셨다고 합니다. 깊은 명상을 하기 위하여는 바른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다석의 무릎꿇는 자세나 결가부좌의 자세를 하면 머리와 허리가 곧고 가슴이 열리는 바른 자세가 됩니다. 의자생활에만 익숙하고 무릎을 꿇거나 결가부좌 자세가 어려운 대부분의 현대인은 반가부좌나 의자에 앉아 머리와 허리를 곧게하고 가슴을 펴면 역시 바른 자세가 됩니다. 

*********

씨순길은 매월 첫 토요일입니다.



12월의 씨순길

1928년 다석이 YMCA 현동완 총무의 간청으로 연경반 모임을 씨작할 때 부터 1935년 구기동으로 
이사할 때까지 아버지가 차려준 솜공장 경성제면소를 경영하며 7년 동안 적선동에 살았습니다.   

오는 12월 첫 토요일은 씨순길 1주년 되는 날입니다. 
짧은 순례를 하고 인사동 한정식집에서 기념잔치를 갖습니다.

순례 출발은 적선동(경복궁역)에서 합니다.
사직공원 뒤 인왕산길 따라 올라 창의문(자하문)고개의 윤동주시인의 언덕까지 걸어갑니다. 
이곳은 다석이 구경각을 얻은 북악마루를 가장 근접하여 바라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순례길은 3Km 거리로 완만한 오름길로 아주 천천히 걸어 2시간 걸립니다. 
하산은 교보문고행 1020 지선버스(녹색) 버스를 타고 안국동에서 내립니다. 

안국동 버스정거장에서 길만 건너면 인사동 골목입니다.
인사동길은 적선동에서 종로 YMCA에 가는 길목이기도 합니다. 
곧 상세내용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www.cr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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