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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e—intro—intercolumn

칼럼소개 특 54 호> "꿈의 페달을 밟고"

by e-bluespirit 2001. 9. 20.








아이들, 여자들이 포함된 시위대로부터 갑자기 사격이 시작된다. 감시병이 피격당해 쓰러지고 여기저기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병사들이 민첩하게 움직인다. 다시 한명이 피격당한다. 지휘관은 시위대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한마디...

"Engage, Eng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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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Rules of Engagement를 보신 분들이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이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고 그 총격을 명령한 지휘관이 정당방위로 사면되는 영화의 스토리는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분노를 금치 못할 테니까 말이다.



이런 영화를 자랑스럽게 만들어낼 정도로 오만한 나라.
지금 미국은 세계 유일의 군사강대국이라고 평가받는 나라다. 그 어떤 나라도 미국과 1:1 승부를 벌일 정도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며, 전쟁이라는 것을 뒷받침할 국가 경제력도 미국에 필적할 만한 나라가 없으니까 말이다. 사실 미 해군의 항공모함 전단중에 3개만 모아 놓는다고 하여도 전투기 약 500대 정도의 우리나라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하니 가히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런 막강한 수준의 군사력으로 미국은 전 세계의 분쟁지역에 개입하고 있다. 예전의 베트남에서부터 시작하여 유고, 동티모르, 중동 등 거의 모든 지구상 분쟁에는 미국이 개입하여 중재를 하고 있고, 또 인근 국가를 무력 점령했다가 미국에 잘못 보이면 이라크와 같이 엄청나게 두들겨 맞게 된다. 가히 세계 경찰이라고 할 만한 수준이다.




이렇듯 상상을 초월하는 파워의 소유자인 미국의 심장부에서 일어난 이번 테러 사건은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을 경악하게 하였고, 그 처절함에 몸서리치게 하였다.

민간 항공기 4대를 납치하여 110층짜리 빌딩 2개를 무너뜨렸고, 펜타곤에 자살 공격을 감행하였으며 백악관이 아니면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을 목표로 했다는 이야기들은 과연 영화속의 장면들이 아닌지 의심을 갖게 하지 않는가.



거대한 비행기를 고층 빌딩에 충돌시키는 모습을 지켜본 세계인들은 '테러'라는 것의 잔혹함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화염에 휩싸인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의 모습, 거대한 먼지기둥을 일으키며 붕괴하는 건물의 모습 등 너무도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보면 복수를 주장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미국의 심장에 비수를 꽂고, 단지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고, 그 건물에서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당했던 수천의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곱게 넘어갈 수 없을테니까. 남북전쟁 말고는 본토에서 전쟁을 경험한 적이 없는 이들에게 이번 사건은 그렇게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흥분하고 있고, "적들을 괴멸시켜라."라고 외쳐대고 있으니까.



미국은 이미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 미 의회는 대통령의 전쟁개시 권한을 인정하였고, 항공모함이 중동에 배치되었으며 지상군 투입에 대비한 작전계획에다가, 5만에 달하는 예비군 동원까지.. 그리고 군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젊은이들의 행렬...



그 어떤 논리로도 이번 사건을 저지를 이들의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충돌한 비행기를 조종했던 이들이나, 그들에게 그런 행위를 명령했던 이들은 과연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자신의 민족이, 자신의 가족들의 수난이 수십년간 이어져오고 있다고 해도 과연 그들은 이번 사건으로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낼 것을 원했던 것일까?



죽어간 5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목숨이 과연 그들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기를 그들은 원했을까? 5000이 아닌 50억 세계인의 시선이 과연 그들에게는 두렵지 않은 것일까?



나는 그렇게 그들을 비난하고 싶다. 아무리 숭고한 이상과 목표가 있다고 하더라도 '무관한' 사람들의 죽음으로, 그리고 이번 사건과 같은 무차별적인 테러의 결과로서 그들에게 얻어질 것은 자국의 민간인들에 대한 반복되는 피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제부터 시작될 미국의 보복으로 다시 피에 물들 대지는 그들의 땅이요, 대규모 폭격으로 죽어가야 하는 것은 그들의 형제가 아닌 누구인가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이번 사건의 범죄자들을 비난하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미국을 비난하고 싶다. 미국에 의해 쓰여진 피의 역사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많은 무고한 민간인들이 미국의 패권주의 앞에서 죽어갔는지 그들 스스로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모든 분쟁지역에 자신들의 입맛대로 개입하며, '깡패국가'들에게는 봉쇄조처로 맞서고 전면전도 불사하며 이제는 MD를 통해 唯一無二의 군사 강대국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미국.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도 많은 이들이 부시 행정부의 독선적 행동과 오만한 정책들에 대해 우려를 표시해 왔다. 미국의 평화를 위해 전 세계를 군비경쟁의 구렁텅이로 다시 몰아넣는다는 숱한 비판들은 우리 모두 너무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저 머나먼 영화속의 예멘 대사관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렇게 미국은 '자신들을 위해' 다른 이들의 가슴에 총을 겨누길 주저하지 않는 나라다.

미국의 앞길에는 항상 '적'이라는 도전자가 있어야 한다. 군수산업의 노동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미국은 군사력을 유지해야 하고, 그만큼 그것들을 소모해야 한다. 2억의 미국인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힘없는 국가들의 수십억 국민들은 '무고한 민간인'으로서 대접받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영광스러운 역사를 숱한 이들의 피로 써오지 않았던가..



새로운 패권주의와 세계 자본주의의 주역으로 등장하고자 하는 미국의 앞길에 얼마나 많은 '적'이 필요할 것인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죽음이 필요할 것인가.
죽음과 복수, 연이은 피의 혈전 앞에서 과연 미국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 써내린 역사의 책임이 자신들에게는 없다고 과연 자신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은 수십년동안 자국을 향한 '테러범'을 스스로 양산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그런 미국에 대한 증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 아닐는지.



조만간 '보복을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먼 훗날 또다른 보복이 오늘의 복수자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더 크고 처참한 테러의 현장에서...











꿈의 페달을 밟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