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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e—cr—life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요 사명이다.

by e-bluespirit 2015. 4. 5.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요 사명이다. 제나에서 얼나로 솟나는 것이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 나라는 들이치는 자가 들어간다고 했다. 들이쳐야 깨닫는다는 말이다. 형이상의 얼나를 들이치는 길은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침략해도 좋다고 언제나 열려 있다. 우리는 앞장서서 하나님 나라로 쳐들어가야(깨달아야) 한다. 

<다석 유영모 어록> 70쪽 



우리 눈앞에 영원한 생명줄이 아버지 하나님 계시는 위로부터 끊어지지 않고 드리워져 있다. 영원한 그리스도란 한 숨이요, 얼 숨이다. 한 말씀 줄(sutra)이다. 얼 생명이란 불연속의 연속이다. 생명은 끊어지면서 줄곧 이어가는 것이다. 오래 살려면 말씀 줄을 자꾸 물려 주어야 한다. <다석 유영모 어록> 67~68쪽 


마치 초목(草木)이 태양에서 왔기 때문에 언제나 태양이 그리워 머리에 이고 태양을 찾아 하늘 높이 곧이 곧장 뻗어가며 높이 서 있듯이,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언제나 우(하늘)로 머리를 두고 언제나 하나님을 사모하며 곧이 곧장 일어서서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궁신(窮身)은 식물의 향일성과 같이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사람의 본성이라고 생각된다. <다석 유영모 어록> 39쪽 유영모  




역사의 흐름에 맑은 물, 흐린 물 따로 없다. 역사의 음악에 높은 악기, 낮은 악기의 구별이 없다. 있는 것은 다만 오직 하나, "살아라! 뜻을 드러내라!"라는 절대명령이 있을 뿐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219쪽


나 하나를 잃어버리면 모든 귀한 이, 어진 이의 말도 거짓이 될 뿐이다. 천하에 거짓으로 나라가 될 리 없다. 고려의 실패만이 아니라, 통히 우리 고난의 역사의 근본 원인은 나를 깊이 파지 않은 데 있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185쪽

역사의 갈 길을 결정하는 것은 감정이냐? 실제 살림이냐? 민중은 나중에는 실제 살림의 요구에 복종하고 마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일을 결정하고 만다. 민중은 이해에 따라 움직이지만, 또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당장 보면 그런 것 같지만, 정말 민중의 길을 결정하는 것은 뜻이다. 역사의 어려움은 민중의 이해와 감정이 일치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 그것에 맞추어, 반대되는 두 다리가 앞으로 나아가듯, 민중으로 하여금 전진을 하게 하는 것은 뜻의 제시다. 그것을 해주는 것이 참 지도자요, 참 영웅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188쪽 함석헌 







일시 : 4월4일(토) 아침 10시
장소 : 연신내역 3번출구

진행 :
연신내역 - 불광중학교 - 윗 불광사 입구 - 아래 불광사 - 탕춘대능선 - 구기동 유영모자택지


< 홍지문과 진달래꽃 >

한양도성의 사대문은 유교의 오상(五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에서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다만 북문은 풍수(風水) 상 음기(淫氣)를 다스리려는 뜻으로 숙정문(肅靖門)이라 하였고 대신 보조성벽인 탕춘대성(蕩春臺城)에 홍지문(弘智門)을 두었으니 지금 세검정 아래 상명여대 앞에 위치해 있습니다. 

1939년 춘원 이광수는 이곳으로 이사 와 유영모와 교류하였으니 그 기록이 춘원의 서간문집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다만 유영모는 물어도 이광수에 대하여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으니 입을 열면 친구의 허물을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날 걸은 순례길에 진달래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북한산의 봄 꽃길의 정취에 취한 어느 씨알이 홍난파의 '봉선화' 가락에 ??유영모의 시'진달래꽃'을 부릅니다. 이현필이 이 시를 좋아하여 동광원의 수녀들이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하면 그렇게 좋은 찬송가가 없었다고 합니다. 시의 전문을 아래 싣습니다.


진달래야
                       유영모

진달래야 진달래아 어느 …팀?진달레지
내 사랑의 진달네게 홀로 너만 진달내랴
진달내 나는 진달내 임의 짐은 내질래

진달래에 앉은 나비 봄 보기에 날 다지니
안질 나비 갈데 없š?지느 꽃도 웃는고야
안진 굼 늦게 깨니 어제 진 달내 돋아

진달내서 핀 꽃인데 안 질랴고 피운다 맙
피울 덴 아니 울고 질데 바 웃음 한가지니
님 땜에 한갓 진달 낼 봄 앞 차질하이셔
( 박영호 저 '다석전기'에서)

< 이번 씨순길의 화두...>

이날 순례의 화두로 <대학 삼강, 大學 三鋼領>을 화두로 삼았습니다. 다석 조차 "어려워서 언뜻 보아서는 모르겠다"고 한 <대학>인데 '무식하니 용감하다'는 세속 말에 기대어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1956년 12월28일 다석이 연경반에서 <대학>을 강의하였습니다. 그보다 3일전인 성탄절날 강의 내용이 <다석일지>에 이날 강의내용과 관련된 메모가 있습니다. 메모에는 "려여기사물 능득명친지, 慮與幾事物 能得明親止"라는 글이 있습니다. 

대학의 삼강령은 1) 명덕을 밝히는 일(明明德) 2) 씨알을 제 몸처럼 아는 일(親民) 3)지선(至善)에서 머무는 일(止於至善)입니다.  "생각하는 것은 사물에 여기(與幾), 사물이 곧 내 것이 되게 하는 것"인데 그러면 삼강령(明-親-止)을 능히 얻게 된다는 뜻이겠지요.

<다석강의> 423~442쪽과 <다석일지> 1권 306쪽(1965.12.25) 참조 바랍니다. 두 원전을 함께 읽으면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씨알강독회에서는 원전강독을 시작한다고 합니다.(참가 희망자는 사무국 문의)

< 씨알과 북한산길 , 유영모 자택지 ~ 함석헌 기념관 >

북한산은 씨알과 특별한 인연과 의미가 있는 성지입니다. 우선 서쪽 구기동에는 유영모의 자택터가 있고 동쪽 쌍문동에는 함석헌께서 생에를 마치신 자택이며 곧 개관할 함석헌기념관이 있습니다. 또 두분과 깊이 교류한 김교신 자택터며 수유동 애국지사의 묘역과 4.19국립묘지가 있습니다. 

구기동 유영모 자택터와 쌍문동 함석헌기념관을 잇는 북한산의 둘레길을 씨알의 월례 순례길로 정하고 이어 이어 걷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씨순길 도반들의 의견에 따라 사이 사이 다른 길도 걸을 수 있습니다. 항상 SNS나 전화나 문자나 까페 게시판이나 의견을 주시면 참조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번 씨순길은...>

"나는 걸을 때만 명상을 할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다리와 함게 움직인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사회계약" 의 저자,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생각하는 씨알이라야 산다(함석헌)"  생각하기 위해 우리는 걷습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춥니다. 겨울동안 움추렸던 만물이 소생하는 봄입니다. 벌써 북한산에는 진달래 개나리가 피었습니다. 봄길을 걸으며 기지개를 켜고 몸을 펴서 하늘기운을 마음껏 들이 마십시다(伸身瞻撤乾元氣  - 多夕). 

이번 순례길은 약 6킬로의 길지 않은 길이지만 오르 내리막이 반복되는 북한산 자락입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북한산둘레길 옛성길 구간입니다. 옛성길이란 탕춘대산성을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탕춘대성벽을 만나는 것은 순례길의 막바지 잠시 뿐입니다. 

오르고 내리며 구불구불 2~3 시간 걷다보면 창춘대 산성의 성벽과 암문(暗門)을 만나는데 그러면 곧 하산을 하게 됩니다. 산길을 하산하여 구기동 마을에 접하면 거기에 기적처럼 다석의 옛 집터 구기동 150번지 지금의 현대빌라의 붉은 벽이 나타납니다.


< 다석의 가족사랑 >

6.25 한국전쟁 때 유영모는 미처 피난을 가지 못했습니다. 당시 전황이 얼마나 급했던지 미국 대사관에 근무하던 장남 의상은 전쟁 발람 3일째 가족에게 알릴 틈도 없이 동경 맥아더 사령부에 징발되어 일본으로 갔고 구기동 자택에는 차남 자상과 가족 다섯이 남았습니다. 풍전등화와 같던 전세는 유엔군의 파병으로 반전되어 서울의 9.28 수복을 얼마 남기지 않았던 때 무장한 인민군이 구기동집에 들어닥쳤습니다. 

그리고는 차남 자상을 남한의 경찰로 오인하고 권총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려 하였습니다. 차남 자상은 성격이 예민하고 내성적이라 어릴 때 부터 대인공포증이 있었습니다. 위기의 순간 다석은 번개처럼 겁에 질려 아무 소리도 없이 꼼짝 못하는 차남 의상을 감싸며 총구를 가로 막아 총알을 대신 받으려 했습니다. 

차남 자상은 이렇게 술회합니다. 
"그 때 아버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전번 3월 참배하였던 다석묘소는 차남 자상이 농사 짓던 터전입니다. 다석은 아들을 위해서 목숨도 아끼지 않는 보통의 여늬 아버지와 같이 따뜻한 피가 흐르고 가족을 사랑하던 분이었습니다. 


< 함석헌기념관 >

북한산은 유영모 구기동 자택지와 함석헌의 쌍문동집을 품고 있음으로 씨알의 성스런 산이 되었고 한강은 함석헌의 원효로집터를 함석헌의 원효로 자택지를 적시고 있어 씨알의 성스런 강이 되었습니다. 북한산과 한강은 씨알의 생각, 씨알의 사상을 낳고 키워낸 씨알의 성지입니다.  

함석헌의 쌍문동집은 도봉구청에 의해‘함석헌 기념관'으로 개축 단장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올해 탄신기념일에 ??3월13일 개관예정이였으나 구청당국에 문의하니 7월이 되어야 개관될 것이라 합니다. 개관하면 기념관을 기점 또는 종점으로 하는 순례길을 걷도록 하겠습니다.

< 북한산과 유영모 >

북한산은 씨알의 성지입니다. 
아니 오늘 우리가 씨알성지로 선포합니다. 

동쪽에는 함석헌이 마지막 삶을 보낸 쌍문동 자택이 있고 서쪽에는 유영모의 구기동 자택지와 고조 때부터의 3대에 이르는 인연이 있습니다.  

유영모의 고조부 유동식은 조선조 영조임금 때 황해도 구월산 아래 문화 유씨의 집성촌 문화마을에서 지금의 부암동인  자하문 밖 삼계동천(三溪洞天)으로 이사합니다. 유영모의 부친 유명근은 박석고개 너머에서 부인을 맞이하니 그 분이 모친 김완전입니다. 당시 박석고개는 호랑이가 출몰하던 곳으로 호랑이의 피해가 커 나라에서는 호랑이를 잡는 방호군(防虎軍)이 있었습니다. 

또한 함석헌과 일제 때 성서조선사건으로 함께 옥고를 치뤘던 김교신의 옛 집터가 북한산에서 흐르는 정릉천변에 있고 수유동에는 이준 손병희 이시영 신익희 김창숙 여운형 지청천 무명광복군 등등 애국선열이 영면하는 묘역이 있습니다.

4월에는 박석고개가 가까운 연신내역에서 시작하여 북한산자락을 따라 구기동 유영모자택지까지 걸으려고 합니다. 북한산둘레길 8구간 일부와 7구간 탕춘대능선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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